원래, 향수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스무살 생일에 선물받았던 향수를 아직 반도 못썼고, 혹시나 회사에서 쓸 일이 있을까 해서 회사 책상위에 있지만 그대로다..; 향이라곤 비누향밖에 모르고 살다가 가장 처음 선물받은 향수는 돌체 앤 가바나의 라이트블루. 케이스는 단순하게 생겼는데, 향은 뭐랄까...달콤하다! 뿌리는 처음엔 시원한데, 뒤로 가면 갈수록 달콤해진다.....그래서 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음..내가 싫어하는 샤넬No.5 계열은 아닌데, 이게 무슨 비누나 샴푸린스바디클렌져도 아니고 그 달달한 향이 난 좀 답답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향수를 처음 만나게 되었으나, 여전히 나에게 향수는 멀고도 먼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2. Chris 1947
향수는 상대에게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겠지만, 내 기준으로 향수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다. 비록 다 날라가버려서 상대는 느낄 수 없다고 해도, 외출해서 집에 들어가 씻을 때까지 나는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향수를 선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향이 계속 나를 쫓아다닌다면,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찬디올의 Chris 1947은 내가 처음만난, 너무나 좋아하게 되어버린 향수이다. 물론 내가 직접 사진 않았고, 갖게 된 경로가 그닥 자랑스럽게 말할 순 없는...이라고 말하면 선물한 사람이 싫어하겠지? 2004년 겨울즈음, 올림픽대표 발탁이 된 권모선수가 원정가길래 선물사오라고 노래를 불러서, 국대 유니폼이랑 같이 획득한 아이템이다. 난 단지 선물이라고 했는데, 알아서 향수를 사와서 던져줬다는..;; 어쨌던간에 그렇게 만나게 된 향수. 선물받았기에 좋아하는게 아니냐-라고 하면 라이트블루는 선물받아도 좋아하지 않아효라고 대답해야하나. 라이트블루의 달달한 잔향이 싫었던 나에게 크리스1947은 너무나 상큼했다. 물론 왠만한 향수가 달달하지만, 라이트블루의 잔향과는 또 다른 느낌! 상큼함이 훨씬 더 많이 느껴지는 덕분에 사용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열심히 썼는데..생각해보니 단종된거다. 왠지 아까워서 전혀 쓸 수 없는 이 기분.. 올 봄, 홍콩의 사사에선가 면세점에선가 똑같은 향수를 발견했음에도 사오지 못한 아쉬움이 배가 되어버린거지..ㅠㅠ
3. Eau de Fleur Silk
크리스 1947덕분에 향수에 눈(?)을 뜨게 된 나는 향수매장에 가게 되면 한번씩 다 시향하고 이게 좋다 이건 싫다..이런 장바구니 놀이(?)를 종종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가을, 홍콩에 가서 본 겐조의 오드 플뤠르 실크. 겐조의 플라워 바이 겐조를 좋아라 하던 나는 신상!을 보고 눈이 반짝반짝거려서 시향을 해봤는데..매그놀리아Magnolia, 실크Silk, 티Tea 의 세 시리즈로 나온 향수중에서..실크가 완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거기서 사왔냐고? 그게...가방도 무겁고 돈 생각도 나고..막 이래서 사오지 못했다는 슬픈 뒷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안고 귀국 하고 지내던 어느날, 향수매장을 지나다가 다시 시향해 본 오 드 플뤠르 실크...너무 갖고싶어진거돠..!!!! ㅠㅠ 젠장..끝내 "정품따윈 상관없어"를 외치면서 인터넷을 뒤져서 사고 말았다. 아아, 이럴거면 도대체 왜 난 홍콩에서 면세가격으로 안사온거야 ㅠㅠ 라고 말해도 이미 늦은건 어쩔 수 없고... 같이 시향했던 언니는 매그놀리아가 더 좋다고 그랬지만, 난 이미 실크에 꽂힌상태... 크리스 1947 이후에 가장 마음에 든! 향수다. 덕분에 외출하기 전에 혼자 뿌리고 혼자 기분좋아라 한다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내 마음에 드는" 향수를 찾았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런게 지르고 나서 하는 자기 위안...;)
4. L'eau Par Kenzo Homme
대부분의 향수는 이성에게 더 높은 선호도를 보인다고 한다. 여자들이 남자향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라던가 뭐라던가..뭐 그렇다. 이런 근거없는 소리와는 상관없이, 내가 너무너무나 좋아하는 남자 향수가 두개 있는데, 이세이미야케ISSEY MIYAKE의 로딧세이 옴므와 겐조KENZO의 르파겐조 옴므다. 특히 르파겐조 옴므는 심각하게 내가 사서 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2004년 코딱지만하던 샤를드골 면세점에서 사서 내게 크리스1947을 선물해 준 권모선수에게 선물을 했다. 과연 쓰는지는 확인불가..ㅋ 파란색 용기도, 상큼한 향도 그야말로 내맘에 쏙 들어서, 남자친구 생기면 꼭 쓰게 만들겠다라고 다짐만 하고..이러고 있지만-_- 가까운시일내에 실현해보기를 바라..는거지 (엉엉)
모든 사람이 향수를 써야하는건 아니다, 비누,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바디로션까지 향이 적용된 제품은 너무나 많고 그 나름대로 최적의 배합으로 선택된 향이기에 본인이 좋은게 좋은거다. 향이라는 건 얼마나 호불호가 갈리고 계절도 타고, 시향하는 사람의 상태도 많이 좌우하는지...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향수의 쓰임새는, 출근길 나를 스쳐지나가는 그 사람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르빠겐조 향이 날때..? 그렇게 상대를 기분좋게 만드는 정도의 향수 사용. 너무 좋다... 아, 심각하게 여행 가는 친구에게 르빠겐조 팜므를 사다달라고 부탁할까 고민해봐야겠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