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은 여전히 재미있는데
EI 과제 일은 하기 싫다.
나는 내가 이렇게 월급을 주는 회사에 대한 loyalty가 큰 줄 몰랐는데
회사에서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 생각보다 큰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 돈 백원도 안주고
하다못해 내가 낸 세금으로 일하는 국가 과제 일은 진짜 하기 싫다.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회사도 이걸 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 KPI에 눈꼽만큼 잡혀 있는 이 일에,
연구원 참여도도 30%가 채 안되는 이 일에
월초가 되면 내가 내 근무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게 싫다.
내가 이렇게 내 일을 좋아하고, 집중하고 있었는지 모를만큼
덕분에 요새 정말 바쁘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본 것도 오랜만인 듯 하다.
월초에 시작한 연구비 관련 일은
지난주 금요일이나 되어서야 끝이 났고
이번주엔 홈페이지 만든다고 자료 작성하고
금요일엔 신제품 때문에 공장 가야하고
담주엔 봉사활동에 BioKorea도 하루, 그리고 정기 세미나발표도 있고
10월 초엔 과제 워크샵도 가고 월초니까 또 연구비 처리 해야 하고
회사 erp에 입력하고 연구비 카드 사이트에 또 입력하고
화요일엔 오후에 서울대 가는데
정문에서 시위하고 있어서 버스가 안들어가더라
맥북에어랑 노트 몇 개를 든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500동까지 걸어가는데 진짜 싫더라
내가 지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
발도 아프고 오르막길인 길도 싫고 도대체 난 여길 왜 가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여전히 나를 누르고 있고, 내 두통의 원인이며
순간순간 날 울기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있다.
진짜 간만에 힘든데 해결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씻고 머리말리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신제품 관련 자료 작성하고, 메일 보내고 있는 난 뭐하는걸까.
오후에 또 서울대 가야하니까 지금이라도 일을 좀 해둬야겠으니까 어쩔 수 없는거지.
그런데 이제,
힘들다, 피곤하다 이런 얘기 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이 가장 힘들고, 자신이 가장 바쁘고,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문제도 충분히 크고 중요하지만, 따지고 들면 내 일이 가장 무겁고 큰 짐이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만큼, 상대를 헤아리지 못하기에
상대도 역시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힘든 상태에서 상대가 힘들다고 말하면 그건 정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내가 상대를 다 헤아릴 수 없기에
상대가 내 상황을 헤아려주는 것을 기대하는건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이다.
그리고 힘들다고 말하면서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한다면 그것또한 슬픈 일이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시켜야 하고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일에 투자하면서 고민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도 다 이해받지 못할텐데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설명한다면
나도 그만큼 상대의 상황에 대해서 듣고, 이해해야한다.
나는 그렇게 할만큼의 헤아림이 없기 때문에
상대에게도 그런 헤아림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힘들다는 말도 적당히 하고
피곤하다는 말도 적당히 하자.
무슨 노래 후렴구도 하니고 후크송의 반복 구절도 아닌데
내 입에서 힘들다는 말, 피곤하다는 말, 언제 퇴근하냐는 말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상대를 다 헤아릴 수 없기에
상대도 나를 다 헤아릴 수 없고
그래서 이제 힘들다고 징징대는건 그만해야겠다.
사실
상대에 대해서
서로가 그렇게 큰 관심이 있는것도 아니니까.
"힘들겠네, 어쩌니, 힘내-"
이런 입바른 얘기 듣자고 내 얘기하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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